풍력발전기, 소방법 사각지대…사망 외주근로자 2명 계약직(종합)

운영·유지보수 관련 문제점 속속 드러나…발전기 자동소화장치 작동 여부 조사 필요

근로자 안전지침 준수 교차 감독할 시스템 부재…"정부 공통 매뉴얼 만들어야"

멈춰선 영덕 풍력발전단지
(영덕=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24일 오전 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풍력발전단지 내 한 풍력발전기가 전날 화재로 검게 타버린 가운데 해당 발전기 너머로 멈춰 선 풍력발전기들이 보인다. 2026.3.24 mtkht@yna.co.kr

(영덕=연합뉴스) 손대성 최수호 박세진 황수빈 기자 = 지난 23일 외주업체 근로자 3명이 사망한 경북 영덕 풍력발전기 화재 사고를 계기로 그간 주목하지 않았던 시설 운영·유지보수 상의 구조적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관련법상 풍력발전기 운영 주체가 자체 판단으로 소화 시설을 설치하도록 해 소방 당국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데다가, 노후 시설 유지·보수에 투입하는 외주업체 근로자들이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받고 적합한 장비를 착용한 채 작업 현장에 투입되는지를 감독할 체계적인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24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풍력발전기는 일반 건축물과 성격이 다른 까닭에 소화설비 설치 등이 필수인 관련법 적용 대상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공동주택과 근린생활시설, 문화·집회시설 등 30개 범주에 속하는 건물 등을 대상으로 한다.

이 법을 적용받는 시설들은 종류 및 규모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소화설비와 경보설비, 피난 구조설비, 소방용수 설비 등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이를 어길 시 과태료 등 처분이 내려진다.

하지만 전날 불이 난 풍력발전기는 소방법 적용 대상이 아닌 까닭에 화재에 대비한 소화설비라고는 자체적으로 판단해 마련한 것이 전부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소화설비는 풍력발전기 내부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사고 발생 당일 정상적으로 그 기능이 이뤄졌는지는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전날 발전기 상부에서 발생한 불은 사고 이틀째인 지금까지도 완전히 진화되지 않고 있다.

당국은 "불이 난 곳이 지상 80m 높이 고공인 데다 발전기 내부에 남아 있는 기름 등도 진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영덕군 측은 "풍력발전기는 일반 건축물이 아닌 구축물(땅에 설치된 건축물 이외 구조물)이라 소방법 적용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번에 화재 사고가 난 풍력발전기는 2005년 준공돼 설계수명 20년을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설계수명은 설계 단계에서 정상적인 운전이 가능하다고 보장하는 기간이나, 이를 지났다고 설비를 교체해야 한다거나 철거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다만 시설 운영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유지보수 등이 이뤄져야 하므로 이에 대비해 작업자 안전 매뉴얼 등을 마련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하고 있는지를 당국·민간업체 등이 교차로 체크할 시스템 구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는 풍력발전소는 최초 인허가 과정을 제외하면 정부 기관 또는 지자체가 관리·감독할 권한을 갖지 않고 있다.

원청인 운영업체 또한 발전기 시설 유지·보수가 전문 영역이라는 등 이유로 작업자 교육 및 적절한 장비 착용 등 현장 안전 관리·감독 권한을 외주업체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연합뉴스 취재 결과 사고가 난 풍력발전기 유지·보수를 맡은 외주업체는 직원 수가 몇 명 안 되는 소규모 업체로, 화재로 사망한 근로자 3명 가운데 2명은 계약직원으로 확인됐다.

또 당시 작업 현장에 원청인 풍력발전 단지 운영사 소속 직원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주업체 직원들은 현장에서 자체적으로 발전기 날개(블레이드)에 생긴 균열을 보수하는 작업을 수행했으며, 사고 발생 40분∼1시간여 전인 낮 12시∼12시 30분께 소속 업체 대표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높이 80m가량에 이르는 풍력발전기 상단에는 위급 상황에 대비해 로프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한 설비가 설치돼 있었으나, 화재 발생 당시 발전기 내부 꼭대기 부근에서 작업했던 사망 근로자 3명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이를 활용해 비상 탈출을 하지 못했다.

풍력발전 단지 운영사 측은 "발전기 시설 유지·보수 작업을 맡는 외주업체들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업무 기준과 안전 매뉴얼 등이 있을 것"이라며 "다만 해당 작업이 전문 분야인 까닭에 (원청이)현장에서 이를 관리·감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어 "현장에서 업무가 이뤄지는 방식을 두고 원청과 외주업체 간 책임 범위 소지를 가리는 것도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번 영덕 풍력발전기 화재 사고를 계기로 근로자 안전 관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정부 차원의 풍력발전기 관리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윤정현 한국토목기술사회 부회장은 "풍력발전기 관리 감독 권한이 지자체에 없고 업체별로 자체 매뉴얼을 만들어 관리하는 실정"이라며 "정부 당국이 공통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문우 한국화재보험협회 방재시험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럽과 달리 한국 소방법에는 풍력발전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소화 설비를 구비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며 "풍력발전기 특성상 내외부 공기 순환이 가능해야 해서 불이 나면 진화가 어렵다. 풍력발전기 특성에 맞는 진화 설비나 장비가 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23일 오후 1시 11분께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풍력발전 단지 내 한 풍력발전기에서 불이 나 발전기에 올라가서 수리하던 작업자 3명이 지상 출입구와 추락한 블레이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 블레이드가 추락하면서 불이 주변으로 번져 산불로 이어졌으나 같은 날 오후 6시 15분께 산불은 진화됐다.

검게 그을린 풍력발전기
(영덕=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24일 오전 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풍력발전단지 내 한 풍력발전기가 검게 그을려 있다. 해당 발전기에서는 전날 불이나 발전기에 올라가서 수리하던 작업자 3명이 숨졌다. 2026.3.24 mtkh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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