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성인 검증 없고 탈세까지…경찰 "해외 서버라 감시 한계"

텔레그램에서 1천208명이 참여 중인 주류 거래방. 적게는 10만원대에서 많게는 4천200만원 상당의 위스키가 판매 중인 모습.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수현 기자 = "맥캘란 파인앤레어 1938 31년: 4천200(만원)"
지난 13일 둘러본 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위스키, 사케, 와인, 백주 등 다양한 주류를 판매한다는 글들이 사진과 함께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현행법상 주류 판매업 면허가 없는 개인 간의 주류 거래는 명백한 불법이다. 그러나 1천200여명이 참여 중인 '위스키 꼬냑 사케 와인'이라는 이름의 이 주류 거래방은 1년이 넘도록 텔레그램 상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15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늦은 밤에도 100여명이 동시 접속하는 이 대화방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직거래나 택배로 술을 사고판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대중에 잘 알려진 조니워커 블루라벨부터 최고급 중국 백주인 우량예,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맥캘란 고급 라인인 파인앤레어까지 종류와 가격대도 천차만별이다.
거래 방식은 여느 중고 거래와 다를 바 없다. 대화방에 올라온 매물을 보고 판매자에게 일대일 대화를 걸어 거래를 진행하는 식이다.
한 참여자는 연합뉴스에 "일본과 달리 국내에는 주류 중고 매장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며 "수집이나 투자 목적으로 산 술을 음성적인 매입상에게 넘기면 제값을 받기 힘들어, 개인 간 직거래 수요가 몰리며 이런 대화방이 생겨난 것"이라고 귀띔했다.

시그널에서 990명이 참여 중인 주류 거래방에 올라온 사진들. 면세점에서 산 제품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러한 무면허 개인 거래는 엄연한 형사 처벌 대상이다. 조세범처벌법에 따르면 주류 판매업 면허 없이 주류를 판매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아무런 검증 절차가 없다는 것도 맹점이다. 불법 거래인 탓에 가짜 술을 속아서 사더라도 피해 구제가 어렵고, 신분증 확인 절차가 없어 청소년이라도 텔레그램 계정만 있으면 제약 없이 술을 구매할 수 있다.
관리자가 "거래 일방 취소나 메시지 삭제 시 강제 퇴장시키겠다"고 공지하고 있지만, 철저히 개인 간 비밀 대화로 이뤄지는 텔레그램 특성상 실효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평가다.
탈세 문제도 심각하다. 대화방 매물 중 상당수는 면세점 포장지가 그대로 뜯기지 않은 제품들이다. 주세법상 면세 주류를 판매 목적으로 소지하거나 판매한 사람에게는 2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 거래방은 당초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시작됐다가, 불법행위 신고가 누적되자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이나 시그널 등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시그널 주류 거래방에 올라온 판매 상품 사진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수사 당국도 단속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경찰 관계자는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익명성이 강하다 보니 음성적인 불법 거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상시 모니터링과 추적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가짜 주류 유통과 탈세, 청소년보호법 위반 등 파생 범죄의 심각성을 고려해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현재 경찰의 위장수사는 디지털 성범죄 등에 한정돼 허용되고 있다"며 "텔레그램 등을 악용한 지능적 불법 거래를 적발하기 위해서는 위장수사 허용 범위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su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