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 잠수함 6개월간 바닷속 잠행 가능…국방에 큰 도움"
"원자력에 박정희 이승만 대통령 큰 기여…김대중 대통령도"
"원자력 기술 계속 발전시켜야"…원자력 대부 장인순 박사 인터뷰
[※ 편집자 주= 장인순 전(前) 원자력연구소 소장 인터뷰 기사는 분량이 많아 다섯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세 번째로 한국의 원자력 잠수함 건조 능력 등을 다뤘습니다. 다음 주 이후에 나가는 4∼5번째 기사는 기술 자립 과정에서의 노력과 고난, 본인의 은퇴 이후 삶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삶]은 자서전적 인터뷰여서 개인 스토리와 사진 등이 많이 들어갑니다. 이미 송고한 1∼2번째 기사의 제목과 내용 요약은 이번 기사 맨 아랫부분에 수록했습니다.]

[윤근영 기자 촬영]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한국은 원자로 1등, 선박 1등 국가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핵 추진 잠수함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입니다. 디젤 엔진 대신에 작은 원자력 발전소를 잠수함에 장착하면 됩니다. 한국은 원자력 잠수함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나라입니다. 북한은 그런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러시아 등 다른 나라의 지원 없이는 만들지 못합니다."
이는 장인순 전(前) 원자력연구소(지금은 원자력연구원) 소장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에 있는 전의마을도서관에서 지난 1월 24일부터 네 차례 진행됐다.
그는 인터뷰에서 "핵 추진 잠수함을 만들면 한국군 전력에 큰 도움이 된다"면서 "적진 앞바다에서 6개월간 숨어 있을 수 있고, 필요하면 근접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 전 소장은 "국가는 당연히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국방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그 차원에서도 원자력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1940년생인 장 전 소장은 고려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중 1979년 정부의 부름을 받고 귀국했다. 이후 30년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일했으며, 1999년부터 6년간은 이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그는 핵연료 국산화, 한국형 원자로 개발 등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받았다. 2005년에는 '닮고 싶은 과학기술 10인'에 선정됐다. 그는 여러 훈장과 상을 받았지만 닮고 싶은 과학자로 뽑힌 것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다.
장 전 소장은 5년 전 사비를 들여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에 전의마을도서관을 열었다. 저작물 등을 통해서도 국민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가 젊은 연구원 시절부터 1년에 50권 책 읽기를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명절 때가 되면 도시락을 싸 들고 도서관 등에 가서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는 강연, 행사 참석 등을 통해 원자력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윤근영 기자 촬영]
다음은 장인순 전 소장 인터뷰 3차 기사 질문-답변
-- 본인은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유학비 부담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 장학금을 받았으니 등록금은 필요 없었다. 생활비로는 학교에서 매달 500달러가 나왔다. 나는 생활비를 최대한 절약해서 한 달에 100달러만 사용했다. 지하 방 임대료로 1주일에 14달러를 냈고, 식사는 교내에서 샌드위치로 해결했다. 1달러라도 아끼려고 애를 썼다. 나머지 400달러는 한국에 보내서 동생들을 공부시키는 데 사용했다. 당시 한국에서 400달러는 큰돈이었다.
-- 캐나다에서 공부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나.
▲ 나는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공부해야 했다. 언어가 서툴렀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이 칠판에 적은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말씀하시는 것은 절반가량도 알아듣지 못했다. 당시 한국의 시골 중고교에서 해석 위주로 영어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은 독학하다시피 해야 했다.
-- 시험 성적은 어떠했나.
▲ 시험은 잘 봤다. 워낙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2학년 때 아주 중요한 시험을 봤는데 눈을 떠보니 병원에 누워 있었다. 시험 도중 쓰러진 것이었다. 그랬더니 지도교수님이 화학과 입구에 '장인순은 밤 11시 이후에는 연구실에 남아있지 말 것'이라고 써 붙여 놨다. 그 이후 나는 밤에 연구실 대신 집에서 공부했다.

[본인 제공]
-- 유학 시절 인종 차별을 받지는 않았나.
▲ 당연히 차별이 있었다. 백인이 우리를 보는 것과 우리가 백인을 보는 것은 다르다. 그들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가 피부로 느낄 때가 많았다. 어떤 모임을 할 때 자기들끼리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끼어 있으면 의사소통이 안 되니 답답하기는 했을 것이다.
-- 유학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었나.
▲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그걸 풀 방법이 없었다. 서양 아이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실 처지도 아니었다. 그래서 시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읽은 시 가운데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로부터 큰 자극을 받았다. 이 시는 내 인생에도 영향을 줬다. 1979년 정부의 부름을 받고 미국에서 귀국하려 할 때 주변 사람들이 말렸다. 미국에 있으면 편히 사는데, 왜 힘들게 사는 한국에 가느냐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 유학 생활 에피소드가 있다면.
▲ 어느 날 마트에 갔더니 바나나가 많이 쌓여 있었다. 가격표에는 48센트라고 돼 있었다. 나는 사 먹을 엄두를 못 냈다. 당시 한국에서도 바나나는 매우 비싼 고급 과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가 20개 정도의 바나나 번들 하나를 사는데 1달러만 내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마트 직원은 거스름돈까지 줬다. 놀라서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그 번들 하나가 48센트였다. 나는 낱개 하나가 48센트인 줄 알았다. 그날 바나나 번들 하나를 사서 실컷 먹었다. 그날 밤에 배탈이 났다.

1978년 4월 29일 상업운전을 시작한 국내 첫 상업용 원자력발전소 '고리1호기'의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앞줄 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 본인은 불소 화학을 전공한 덕분에 미국 아이오와대에 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것인가.
▲ 그렇다. 불소는 핵연료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물질이다. 1978년 8월에 한국의 세미나에 참여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미국에 있는 과학자 100명 정도를 초청한 것이었다. 비행기표를 포함한 여행 경비를 한국 정부가 제공했다. 나는 세미나에서 불소에 대해 발표했는데, 세미나가 끝나고 어떤 사람이 만나자고 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 일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는 한국에 불소 화학을 전공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1979년 3월 귀국해서 충남 대덕연구단지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 역대 대통령 가운데 원자력 발전에 가장 기여한 분은 누구인가.
▲ 박 대통령이다. 그분은 1971년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공사를 시작했다. 건설비는 당시 정부 1년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당시 어떤 사람들도 그걸 찬성하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결국 원자력 시대를 열었다.

1959년 7월 14일 원자로 기공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역사적인 시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 다음으로 원자력 발전에 기여한 대통령은 누구인가.
▲ 이승만 대통령이다. 그분은 1959년에 원자력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1백여명을 미국에 보내서 공부하도록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70달러였던 시절이었으니 당시 한국은 후진국 중 후진국이었다. 이 대통령이 혜안을 가졌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과학정책 고문이었던 워커 시슬러 박사가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은 원자력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에 근무하면서 원전 건설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분도 기여를 많이 했다.
-- 김대중 대통령은 어떠했나.
▲ 그분이 대통령이 됐을 때 참모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없애자고 건의했다고 한다. 김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원전 없이는 에너지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안목은 이래서 중요하다.

1998년 9월11일 김대중 대통령(오른쪽에서 3번째)이경북 울진군 울진원자력사업본부에서 열린 울진3호기 준공식 및 5, 6호기 기공식에 참석, 기념발파 단추를 누른 뒤 손뼉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 미국은 한국에 핵 추진 잠수함을 허용한다고 하는데, 한국은 독자적으로 잘 만들 수 있을까.
▲ 쉽다고 할 수 없지만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한국의 조선(선박 제조) 기술은 세계 1등이다. 잠수함에 디젤 엔진 대신 소형 원자력 발전소를 장착하면 그것이 핵 추진 잠수함이다. 한국은 원자로 제조 기술도 세계 1등이다. 마음만 먹으면 핵 추진 잠수함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잠수함 제조 기술 자체도 하이테크가 아니다. 미국이 처음으로 개발한 때가 1953년이었으니 70여년 전의 과거의 기술이다.
-- 한국이 개발한 스마트 원자로는 잠수함에 사용될 수 있나.
▲ 그렇다. 한국은 2012년에 세계 최초로 SMR(소형 모듈 원자로)에 대한 표준설계 인증을 받았다. 이 소형 스마트 원자로는 핵 추진 잠수함의 동력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뛰어난 소형 원자로 기술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 북한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만들 능력이 되나.
▲ 북한은 자체적으로 그런 능력이 안 된다. 원자로도 제조하지 못한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면 만들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2025년 12월 23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미 해군 핵 추진 잠수함(SSN) '그린빌 함'이 입항하고 있다. 길이 110m, 폭 10m에 승조원 110여 명이 탑승한 이 잠수함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12개의 수직발사시스템(VLS), 어뢰 및 4개의 발사관 등을 갖췄다. [연합뉴스 사진]
-- 한국이 핵 추진 잠수함을 보유한다면 국방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나.
▲ 핵 추진 잠수함은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 오랫동안 바닷속에 숨어 있을 수 있기에 바다 장악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적국의 해안선 근처까지 몰래 가서 근접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니 적군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 일반 잠수함은 근접 공격을 못하나.
▲ 디젤 잠수함은 모터가 돌아가야 하니 엔진소리가 난다. 그래서 상대방이 쉽게 탐지한다. 연료(경유)가 많이 필요하므로 연료 탱크가 커야 하는 문제도 있다. 산소공급을 위해 48시간마다 수면위로 올라와야 하는 것도 문제다. 산소는 승조원뿐 아니라 경유 연소에도 많이 필요하다. 반면, 핵 추진 잠수함은 6개월간 바닷속에 계속 숨어 있는 게 가능하다. 별도의 연료와 산소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엔진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상대방이 바닷속에 있는 원자력 잠수함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 6개월간 바닷속에 있으면 승조원이 견디기 어려울 듯한데.
▲ 미국 잠수함은 승조원들을 위한 공간이 크다. 과거 소련 잠수함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승조원 개인을 배려해서 설계하는 측면이 있는데, 소련은 기능 위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공산권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차이점이다.

2025년 10월 22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에서 열린 '장영실 함' 진수식에서 공개된 함정의 모습. 3천600t급의 이 디젤 잠수함은 수중작전 지속 일수가 기존 잠수함보다 향상됐다. [김동민 기자 촬영]
-- 한국은 핵 추진력 잠수함의 연료인 농축우라늄이 없는 게 문제 아닌가.
▲ 미국이 한국에 원자력 잠수함을 허용한다고 하면 적어도 20% 이상의 농축 우라늄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원자력 발전에는 4∼5%의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지만 잠수함에는 적어도 20%짜리 우라늄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엔진 출력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잠수함에서는 농축 수준이 높을수록 유리하다. 미국은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잠수함에 사용한다.
-- 한국이 핵 추진 잠수함을 만들면 수출할 수 있을까.
▲ 한국이 아직 핵 추진 잠수함을 건조하지 않았는데, 수출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우리가 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해서 잘 운용하면 다른 나라가 수입할 것으로 본다. 한국은 핵 추진 잠수함을 잘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나라다. 원자로와 선박 제조 기술에서 세계 톱이다. 다만 수출할 때도 핵 추진 잠수함의 연료인 농축우라늄을 우리가 계속 제공해줘야 하는데, 이는 미국과의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 국가에 필요한 조건은 정직하고 건강한 국민, 국민이 살아갈 국토, 국민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헌법,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국방력이다. 원자력은 국방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된다. 에너지 안보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원자력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
(인터뷰 3차 기사 끝)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천700t급 핵 동력 전략유도탄 잠수함 건조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했다"고 2025년 12월 25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사진]
<장인순 전 소장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미국은 한국없이 원전 못짓지만…한국은 미국없이 짓는다"(2월5일)
한국의 원전 건조 능력은 세계 1위다. 시공, 원자로 설계, 운전 능력 등에서 한국을 따라올 나라는 없다. 이렇게 되기까지 원자력연구소 연구원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밤새워 실험하고 개발했다.
미국은 전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원전 수백기를 추가로 지을 계획인데, 한국의 도움 없이는 지을 수 없다. 유럽 각국도 원전을 지을 예정이어서 한국 원전 수출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전기 생산에서 원자력의 비중은 30% 정도인데, 50%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전기 요금이 떨어져서 서민들의 가계 부담이 줄어들고, 조선업을 비롯한 기업들은 비용 절감으로 수출경쟁력이 한층 더 올라간다.
다시는 탈원전으로 가서는 안 된다. 원자력에 연구개발(R&D) 투자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도 연장해야 한다. 미국은 원전을 80년 정도 사용하는데, 우리는 40년도 못 쓰고 폐쇄한다.
원전의 안전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은 1978년 고리원전 1호기 가동을 시작한 이후 많은 원전을 운영해왔지만,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다.
<장인순 전 소장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핵무기 제조는 휴대폰보다 훨씬 쉽다"…원자력 대부 장인순(2월24일)
핵무기 제조 기술은 하이테크가 아니다. 80년이나 된 과거의 기술이다.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원자로(Nuclear reactor) 제조보다 쉬운 일이다. 원자로에 100만개의 부품이 들어가지만, 핵무기에는 2천개도 안 들어간다.
핵무기 제조는 휴대전화보다도 훨씬 쉬운 기술이다. 한국이 핵무기 제조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국제사회와의 약속 때문이다. 이것이 북한과 다른 점이다. 우리는 리는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 만드는 것이다."
현재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중동, 동남아 국가 등 세계 각국이 원자력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원전 기술을 발전시켜온 덕분에 세계 원전 1등 국가가 됐다.
한국이 국제사회와의 약속 때문에 핵무기를 만들지는 않지만, 군사 강국들이 많은 동북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원전 능력을 꾸준히 발전시키는 것이 그 잠재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원자력 기술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keun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