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이름이 왜 저래?"⋯삼일절, 네티즌이 뿔난 이유 [솔드아웃]

지금 화제 되는 패션·뷰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자리 잡은 오늘,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의 눈길이 쏠린 곳은 어디일까요?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노 재팬(No Japan)'을 기억하시나요?

2019년 한국 사회에서는 일본 여행을 하지 말고 일본 제품도 쓰지 말자는 일본 불매 운동, 이른바 '노 재팬' 바람이 거셌습니다. 당시 일본의 첨단산업 핵심소재 수출 규제로 양국 갈등이 확산, 국민 정서도 급격히 냉랭해진 바 있죠.

다만 지금은 당시 날카로웠던 분위기를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일본 패션 브랜드 매장 앞은 대기 줄로 붐비고, 일본 애니메이션도 극장가에서 꾸준히 흥행하고 있는데요. 수치로 봤을 때도 일본 브랜드 소비는 눈에 띄게 회복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번 삼일절 연휴는 사뭇 달랐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부터 온라인 커뮤니티가 시끄러웠는데요. 화장품 제품명에 낯선 일본어 표현을 사용하거나, 일본 콘텐츠와 컬래버레이션을 한 뷰티 브랜드가 네티즌들의 눈길을 끈 겁니다.

▲(출처='딘토' 홈페이지 캡처)
▲(출처='딘토' 홈페이지 캡처)

'귀칼' 협업부터 일본어 제품명까지…네티즌 의견 '분분'

시작은(?) 메디힐이 끊었습니다. 삼일절 연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과 협업한 메디힐 제품 사진이 게재됐는데요. 적지 않은 네티즌들은 의문을 표했습니다. '귀멸의 칼날'이 인기 작품이긴 하지만,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인 삼일절에 볼 법한 그림은 아니라는 비판이 나왔죠.

더군다나 비슷한 시점 국가유산청과 손잡고 왕실 에디션을 공개한 또다른 뷰티 브랜드, 클리오의 행보와 비교되면서 비판 여론이 확산했습니다.

메디힐의 사례가 화제를 모으면서 일본어 표현을 활용한 뷰티 브랜드들도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딘토는 한 섀도우 팔레트의 이름을 기존 '꽃의 개화'에서 '카가노 치요조'로 변경했는데요. 이는 '꽃의 개화'를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그런가 하면 홀리카홀리카는 한 섀도우 이름을 '벚꽃 안개'를 뜻하는 일본어 '사쿠라 카스미'로 출시했고요. 또 다른 섀도우 팔레트 색상 이름은 '유자'를 뜻하는 '유즈'를 사용해 '유즈 시트러스 티'로 붙였습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콘셉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일본어 표현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직접 브랜드 측에 문의 글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비판 여론을 의식한 탓일까요? 홀리카홀리카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쿠라 카스미'라는 제품명을 '미스티 블러썸'으로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뷰티 브랜드에만 이 같은 비판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지난해 8월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귀멸의 칼날' 주인공 캐릭터인 탄지로, 네즈코의 시구를 예고한 바 있는데요. 당시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개봉을 앞두고 기획한 이벤트였죠.

다만 당시는 광복절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귀멸의 칼날' 원작 만화 배경이 일본 제국주의 팽창기인 다이쇼 시대라는 점, 주인공 탄지로의 귀걸이가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는 등 이유로 우익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는 사실까지 확산하면서 적지 않은 이들이 LG 트윈스 공식 SNS에 "광복절을 앞두고 부적절한 이벤트"라는 댓글을 게시했죠. 구단은 여론을 반영하고 이 이벤트를 취소했습니다.

▲2023년 12월 11일 서울 시내 한 유니클로 매장에 상품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2월 11일 서울 시내 한 유니클로 매장에 상품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노 재팬은 옛말…패션→콘텐츠까지 '불티'

주목할 점은 이런 논쟁과는 별개로, 일본 관련 소비 자체는 노 재팬 운동이 거셌던 당시와 비교했을 때 크게 회복됐다는 겁니다. 뷰티와 패션, 여행, 콘텐츠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 브랜드와 콘텐츠가 다시 일상적인 소비 대상이 됐죠.

대표적인 사례가 유니클로입니다. 한국 운영사 에프알엘코리아는 2025년 회계연도 매출 약 1조3523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8% 성장했습니다. 영업이익도 2704억 원으로 81.6% 급증했는데요. 불매운동 당시 매출이 크게 줄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전 수준을 회복했죠.

이미지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히트텍, 에어리즘 같은 기본 아이템 중심의 실용 소비가 고물가 시대와 맞물리면서 소비자 발길이 다시 늘었을뿐더러 니들스, 언더커버, 엔지니어드 가먼츠, 카우스 등 인기 브랜드들과 협업하면서 '힙한' 매력까지 구축했습니다. 특히 니들스 협업 제품은 순식간에 품절을 기록, 리셀 시장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될 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행에서는 노 재팬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지난해 일본을 여행한 한국 관광객은 946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찍기도 했죠.

일본 콘텐츠의 인기도 여전합니다. '귀멸의 칼날', '체인소 맨', '주술회전' 등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는 국내 극장가에서 꾸준히 흥행을 이어가고 있고, 치이카와, 산리도 등 캐릭터 IP 역시 핫플레이스에서 팝업이나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는 등 여전한 인기를 끌고 있죠. 요아소비 등 J팝 역시 활발하게 소비되는 중입니다.

▲(출처=홀리카홀리카 공식 홈페이지)
▲(출처=홀리카홀리카 공식 홈페이지)

복합적 소비 양상…무맥락 마케팅은 '자충수'

이처럼 일본 브랜드와 콘텐츠 소비는 다시 활발해졌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본 코드가 무조건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소비자 반응을 보면 일본 관련 제품이나 콘텐츠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예전보다 크게 줄었지만 역사적 상징성이 강한 시점이나 맥락이 맞지 않는 마케팅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죠.

특히 삼일절이나 광복절처럼 역사적 의미가 큰 시기에는 작은 요소도 쉽게 논쟁으로 번지곤 합니다.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소비되던 일본 콘텐츠나 일본풍 네이밍도 이 시점에는 다르게 읽히는 건데요. 일본 애니메이션 협업이나 일본어 제품명 자체가 아닌, '언제,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는지'가 소비자 반응을 좌우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브랜드가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문화 코드를 활용하더라도 국내 소비자 정서와 시점을 고려한 마케팅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일본 콘텐츠와 협업하거나 일본풍 콘셉트를 활용하는 전략 자체는 이미 흔한 일이지만,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협업이나 메시지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거죠.

일본 브랜드와 콘텐츠는 일상적으로 소비하면서도 특정 상황에서는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복합적인 소비 양상이 나타나는 요즘인데요. 브랜드가 어떤 메시지와 타이밍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느냐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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